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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아침 평온한 저녁 행복한 정선 정선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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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읍

신동읍의 전설

도깨비에 홀린 이야기

남으 말이야. 큰일 집에 갔다오는데. 그 엣날에는 다 옷갓을하고 이렇게 두루마길 입고 갔잖아요. 그 합숫머리에, 그 삼척물과 정선 물이 그 합수가 되는 디가 있어요. 합수가 되는 데가 있는데, 그 거는 버드낭구가 셋이 있어요. 내가 알애요. 버드낭구 지금은 없는데. 거 아이말이여, 그 할아버지가 술을 잔뜩 취해서 걸 오다 보니까 우떤 아가씨가, 이런 반달같고 비단같은 아가씨가 툭 나오더이만은, "영감님, 울집에서 자고가시오." 딱 그래더래요. 아 그영감이 술이래 췠는데, 그땐 자기 혼이 아닌거여. 홀린 거여. 그래가주고 여자하고 들어가서 유유동락을 핸 깃이 고마 그기 허깨비한티 홀랜기지 뭐. 딱 여러 사람이 말이여 잔치보러 갔는데, 시간은 다 됐는데, 올 때를 바래도 오지 않는다 이기여. 아 거 가 자식들이 찾아가보니 영감이 말이여 딱따구리가 울어대이까 구녕을 뚫어놨는데, 아 이다가 자기 몸을 박아가주고 헉헉대는기여. 그래가주고 그 영감을 집에다 갖다놓고 정신이 난 뒤에 딱 물으니까, 하긴 그 여자를 내가 디리고 잔 것이 이리키 됐다. 그래가주고 그날 도깨비한테 홀린 사실이 있답니다.

  • 채록일시 : 1998년 2월 22일
  • 구연자 : 정연호(남, 69세,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원덕천)
  • 덕천리 이장의 소개로 만난 정연호씨는 1930년 정선 동면 백전리에서 태어나 1987년 신동읍 덕천리로 이사와서 살고 있다. 설화 뿐만 아니라 민요도 많이 알고 있었다.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도깨비 이야기

오다보이까, 아 이 중간에 말이여, 그 물기꼬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서 아가씨 하나가 딱 나오더니 아, 영감님 우리집에 와 술 한 잔 마시고가요 하는데, 거이 도깨비가 있다는걸 알았거든. 그래가주고 뭐 그 영감이 말이여, 기운이 시가지고, 그느믄 말이지 여자를 데려다가 말에다 얹어놓고 그만 쥐구멍이 보이듯 달랬단 말이여. 저녁 때가 돼서 집에 딱 와보니까 아무것도 읎고 빗자루드래요, 빗자루. 빗자룬데, 이기 참 우뜨게 됀나하고 하고 작대갖다 끊으니까 그 빗자루에 피가 묻었드래요. 그래서 지끔 내려오는 전설이 그 부인네가 몸에 핏기가 있을 직에 그 빗자루를 깔고 않지면 그 피가 글로 전한다 이기야. 전하면 그것이 도깨비가 됀데요. 도깨비가 돼가주고 그래서 그기 오래돼기돼면 사람이 돼가주고 변화구축울 한다는거. 그런 예가 있대요. 동면 호촌과 백전 그 새이요. 거이가면 아이 무인지경이예요. 지금은 찻길이 터졌지만은 거 무인지갱이요. 거이 그런 사실이 있지요.거 들어가는 골이 또 있는데, 골 어구에서 그런 사실을 당했답니다.

  • 채록일시 : 1998년 2월 22일
  • 구연자 : 정연호(남, 69세,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원덕천)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도둑굴 이야기

강따라서 이쪽에 내려가믄 거 학교 앞에 뼝창이 있는데, 연포분교 앞에 건네 있는데 드가면 소릴 아무리 질러도 학교 쪽에서는 아무 소리가 안들래요. 옛날 도둑놈들이 거 소를 후베가지고서 거기서 잡아 먹었는데도 멀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해서 도둑굴이라고 하지요. 하먼 임진왜란 전에 얘기라지요.

  • 채록일시 : 1998년 2월 8일
  • 구연자 : 이영재(남, 61세, 정선군신동읍 덕천리 바새)
  • 정선의 향토 음식 조사 중 만난 이영재씨는 1938년 덕천리에서 태어나 줄곧 덕천리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다. 옛날 쓰던 생활용구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고문서도 여러 권 소장하고있다.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도깨비불 이야기

도깨비라는건 저 넘어오는 구레기 고들뱅이에, 그 전에 뭐어 제천에서 열차타고 들어오면 예미에서 저녁을 먹고 촛불을 하나 사가지고 들어와요. 재를 넘어 오는기요. 그 구레기라고 꼬부랑길 있는데, 그 바람 안불면 종이 한 장 이래 싸가지고 해들구 와요. 내 생각을 해보니까 집이 우리 여 아래 집이 저 아래 서낭당 밑에 낀데. 그 저게 날만 궂으면 불이 쭈욱 건네서 이쪽 저 말두루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그래는걸 자주 기염을 하죠. 그런데 거 뭐 홀린 사람은 잘 모르고, 날이 가랭비가 내릴 때 말여 여름이니까 여 찻길을 걸어가지고 걸 찾어 올라가이, 올라가이 또 모르겠고. 뭔 도깨비 불이여. 그 뭐 개똥벌레 처럼 불이 뭐 이래 쭉 건너갔다 또 커졌다 즉어졌다 이래요.

  • 채록일시 : 1998년 2월 22일
  • 구연자 : 오대근(남, 66세, 정선군 신동읍 고성 2리 2반)
  • 정선 신동읍 민요조사 중 고성리 경로당에서 만난 오대근씨는 1933년 영월 하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고성리로와 살고 있다.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새골 이(李)씨에 관한 전설

조동(鳥洞)의 본 이름으로 산의 형태가 꼭 새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생겨난 지명이다.

지금부터 약 3백여년전 어느 선비가 태백산맥을 따라 지나가다가 지금의 새골과 중앙을 가르는 산의 모습이 봉황새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있는 형국인 봉소포란형(鳳巢抱卵形)이어서 '새골'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봉동'(鳳洞), '조동'(鳥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는 논이 없어 지붕을 이으려고 해도 볏짚으로 잇지 못하고 산에서 자생하는 샛대를 베어다가 이었는데, 샛대를 이은 주막이 지금의 함백파출소 앞에 들어서고 그 주변으로 마을을 이루었다.
새골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본이 경주(慶州)파인 이(李)씨 들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다 이곳에 찾아들어 본을 아예 새골 이씨로 바꾸고 이 고장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없어 조와 옥수수, 산나물로 끼니를 이어가던 새골 이씨들이 뿔뿔이 흩어진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이곳에 정착한 새골 이씨들 가운데 이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진사는 무척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성품이 좋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더없이 존경을 받았다. 그런 그도 마침내 가난에 못이겨 죽고 말았다.
어질고 착한 이진사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묘를 잘써야 이씨들이 번창한다고 하며 좋은 터를 정해 장례를 치렀다. 얼마전까지 중앙사택이있던 길가의 양지바른 곳이었다.

이진사가 묻힌 곳은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인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이어서 그곳에 묘를 정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후 이곳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묘자리는 참으로 좋으나 앞 연못에 물이 마를 것이고 뒷산으로는 철마(鐵馬)가 지나가게 될텐데……"
한참동안 사방을 둘러본 스님은 계속말을 이었다.
"물이 없는 거북은 죽은거나 다름없고 생기를 발현하는 꼬리가 잘리니 발복(發福)할수 있는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지"
그러자 스님의 중얼거림에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넓은 연못이 마를리 없고 윗산으로 철마가 지나갈리 없다는 생각에 삿대질을 하며 등을 돌린 스님에게 욕을 했다. "재수없는 중 같으니……"

그로부터 백여년쯤 지나 탄맥이 발견되면서 스님의 말은 맞아 떨어졌다. 마을이 있던 곳에 삼거리(함백파출소앞)를 자르게 되었고 얼마뒤 태백선 기차길을 내면서 새의 목덜미를 잘라버려 더이상 날아갈 수 없는 봉황새의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진사의 묘 뒤로는 기차길이 나 철마가 달리기 시작했고 앞 연못도 1972년 홍수가 난 이후 광업소 사택을 짓기위해 매립해 버렸다.
크게 번창한 나날을 보내려던 새골 이씨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새골 이씨들이 정착했던 이야기는 이와같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온다. 새골에 있던 경주 이씨들의 누각도 사라졌고, 이진사와 그 후손들의 묘만 중앙에 쓸쓸히 남아 있다.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두리봉 마고할멈 전설

옛날 두리봉 안골(지금은 어디인지 위치를 확인할 수 없음)에 마고할멈이 살았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깊은 산에는 호랑이가 살면서 사람을 해쳤는데, 새비재에서 이어지는 두리봉 안골에도 세가구의 화전민들이 모여들어 늘 호랑이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골짜기 동쪽 밭이랑 아래쪽에 여러 해전 열살 배기 어린 애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머리만 바위에 얹혀져 있어 돌무지로 덮어놓은 호식총이 있어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르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더해 가기만 했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곳에 사람들은 떡시루를 덮어 창귀가 빠져나와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했는데, 어느 날 화전을 일구던 마을 노인의 실수로 돌이 굴러 시루가 깨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문을 꼭 걸어 잠갔으나 창귀는 마을과 산을 떠돌며 여러 명을 호랑이 밥이 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북 도사곡에서 올라왔다는 할머니가 지팡이 올무를 만들어 새터골(지금의 아라리고개라고 표시한 아래쪽)로 창귀를 유인해 돌무지에 가두었다. 그때부터 화전민들은 편하게 농사를 지었지만 이 할머니의 행방은 알지 못했다.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은 밤마다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이 할머니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창귀를 막아 준 이 할머니를 마고할멈 이라고 했다.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도깨비 이야기

도깨비라는거 있지요. 예. 머 그전에 옛날에 그랬죠. 고재라는 데요. 고재뻘요. 거 도깨비 있었어요. 우리 어맀을 직에래요. 거 그전에 집이 있었습니다. 여업을하고 그랬는데, 시바에는 읎어요. 그 전에는 거 숲이 많앴거든요. 병자년 가래이 전에는 거 뿔건 낭기가 꾹 찼었거든요. 할루는 해매를 갔다가 오는데, 거 숲에서 저만치서 뭔가 중얼중얼 하잖아요. 날이 어두워지니 이거 어느 놈으 새끼들이 거서 연애 걸라고 그리나부다 그랬지요. 그래 이래 보니까 뭔 빛이 이리 하얀 빛이 나잖아요. 그래 겁이나 돌맹이를 내따 줘 던지니 그놈으 빛이 쑥하고 들어갔다가 그만 나한트로 슬슬 오잖아요. 이렇게 허연 빛이. 그래서 질 옆에 몽둥이를 쥐고 겁이나 다가오민 휘두를 참이었지요. 그래 글 들고 뛰어 왔는데 집에 와보니그기, 쥐고온 그기 참 빗자루 잖아요. 막대기를 분맹히 들구서 왔는데 빗자룰 달고 왔으니 이기 도깨비지 뭐요. 그래서 빗자르는 그 아주먼네들 그 하는 그거 깔고 앉아 묻으민 그이 도깨비가 된데요. 그래 빗자루를 다 쓰고나면 불에다 그 태워 읎앴잖아요. 도깨비가 된다고서요. 시방이야 뭐 읎지만 옛날에는 도깨비고 호래이고 뭐 많았드랬어요.

  • 채록일시 : 1998년 3월 14일
  • 구연자 : 이명근(남, 78세, 정선군 신동읍 운치 2리)
  • 정선 신동읍 민요 조사를 하던 중 만난 이명근씨는 1921년 운치 2리 수동에서 태어나 살고있는 토박이다. 마을 유래와 설화 등을 많이 알고 있었다.
  • 진용선, 『동강아리랑』, 2000, 수문출판사
담당부서 : 신동읍
연락처 : 033-560-2637
최종수정일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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